
화학소재 중소기업이 왜 성장을 멈추는가? ‘피터팬 증후군’의 진짜 원인
많은 분들이 “회사가 크면 더 좋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출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져도 일부 기업들은 ‘성장’ 대신 ‘중소기업’ 자격을 유지하는 길을 택합니다. 오늘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 성장 구조에 어떤 문제가 숨어있는지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무엇이 달라지나?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뿌리이자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집단입니다. 세금 감면, 각종 정부 지원, 공공기관 입찰 시 우대 등 다양한 특혜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일정 매출(3년 평균 매출액 1,000억 원 초과 등)이나 자산(5,000억 원 이상)을 넘어서면 ‘중견기업’으로 분류됩니다.
중견기업이 되면 R&D(연구개발) 세액공제, 글로벌 진출 지원, 정책자금 등 새로운 지원도 있지만, 중소기업 때 누리던 강력한 혜택들이 크게 줄어듭니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 입찰에서 중소기업 우대가 사라지고, 세금 감면도 대폭 줄어듭니다.
실제 사례: 성장했더니 돌아온 ‘불이익’
화학소재 기업 A사는 2020~2022년 평균 매출 1,000억 원을 넘으면서 2023년 중견기업이 될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중소기업 졸업 유예’를 신청해 중견기업 전환을 미뤘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공공기관 매출 비중이 큰데, 중견기업이 되면 입찰에서 중소기업 우대를 못 받아 매출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전시산업을 이끄는 시공테크도 연 매출 1,000억 원을 넘어서며 중견기업이 되었지만, 중소기업 시절에 받던 공공입찰 자격과 수의계약 특혜를 잃었습니다. 시공테크 대표는 “사업을 잘해서 성장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라니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중소기업에 집중된 혜택, ‘피터팬 증후군’의 씨앗
우리나라 기업 지원 정책은 중소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R&D 세액공제만 해도 중소기업은 25%까지 받을 수 있지만, 중견기업은 8~20%, 대기업은 최대 2% 수준입니다. 같은 연구개발을 해도, 중소기업 자격을 잃는 순간 세제 혜택이 크게 줄어듭니다. 법인세, 지방세 등도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26가지나 되는 세금 혜택이 줄거나 사라집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미국·독일 등 선진국은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단일 세율을 적용하거나 지원·규제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성장할수록 늘어나는 규제, 줄어드는 지원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한 기업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넘어가면 적용받는 규제가 57개에서 183개로 3배 넘게 급증합니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이 되면 209개에서 274개로 40% 늘어납니다. 지원은 줄고 규제만 늘어나니,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할수록 오히려 부담이 커지는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견기업이 됐다가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가는 기업이 2020년 274개에서 2023년 574개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기업들이 성장의 사다리에서 일부러 멈추거나, 한발 물러서는 현상,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차등 규제, ‘성장의 동기’를 갉아먹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차등 규제가 기업의 성장 의욕 자체를 꺾는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자산총액 5,000억 원, 2조 원 등 규제 기준 근처에서 기업 규모가 정체되는 현상도 관찰됩니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등 미래 산업을 이끌 중견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 나갈 유인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오픈AI 같은 ‘슈퍼스타 기업’이 한국에서 나오기 어려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정부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니, 창업가와 기업들은 ‘일정 규모’에서 멈추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3년간 연 20% 이상 고성장 기업의 비중도 2009년 11.9%에서 2020년 4.6%로 급감했습니다. 혁신기업, 고성장기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 신호입니다.
정부, “기업 성장 막는 규제·지원 차별 개선한다” 선언
이런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규제와 지원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는 투자, 연구개발, 인공지능(AI) 도입, 수출시장 개척 등 ‘성장’과 밀접한 경영활동에 정부 지원을 집중하고, 기업의 스케일업(규모 성장)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기업이 진짜 성장할 수 있도록 경영 부담을 덜고, 초혁신 기술 아이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죠. 경제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변화의 신호탄입니다.
정리하며 – ‘성장’이 불이익이 아닌 ‘보상’이 되는 생태계로
지금 우리 기업들은 성장의 길목에서 ‘멈추거나’, ‘물러서거나’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더 크게, 더 멀리 나아갈수록 불이익이 쏟아지는 구조라면, 누구도 모험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장한 기업이 더 큰 보상을 받고, 도전과 혁신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기업이 ‘피터팬’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