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AI 스타트업, 왜 이렇게 양극화될까?
팬데믹 이후 AI 창업 열풍과 그 명암
AI 창업, '수퍼톤' 같은 성공 신화의 이면
2020년 3월, 국내에 새로운 AI 음향 전문기업 ‘수퍼톤’이 등장했습니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 음성 합성 기술을 이용해 텍스트를 다양한 목소리로 변환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는데요. 단순히 기계음이 아니라 고(故) 김광석 같은 전설적인 가수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해내면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수퍼톤 창업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오르기도 했죠. 그리고 2023년 1월,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에 450억 원에 인수되면서 AI 스타트업 성공 사례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습니다.
같은 해 창업, 전혀 다른 현실에 놓인 AI 스타트업
하지만 모든 AI 스타트업이 수퍼톤처럼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같은 해에 설립된 또 다른 AI 콘텐츠 스타트업 A사는 지금까지 투자받은 돈이 1억 원도 안 됩니다. 매출도 거의 없는 데다 직원 이탈까지 이어지면서, 대표는 “매출이 제대로 안 나오고 부채만 쌓이니 폐업까지 고민한다”고 토로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글로벌과 국내의 투자 현실, 왜 이렇게 다를까?
지금 전 세계적으로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역대급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 정보업체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AI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약 1100억 달러(155조 원)로, 2022년보다 62%나 늘었습니다. 2024년 1분기에만 글로벌 벤처캐피털(VC)들이 AI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이 300억 달러(43조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국내는 사정이 다릅니다. 국내 AI 스타트업의 2024년 1분기 투자 유치 금액은 194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5%나 줄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인 2020년 한 해에만 104곳의 AI 스타트업이 창업했지만, 이 중 5년 누적 투자금이 5억 원도 안 되는 곳이 24곳, 1억 원 이하인 곳도 8곳이나 됩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AI 창업 붐, 그리고 그 후폭풍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 전환과 언택트(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급격히 늘렸고, AI 스타트업 창업 붐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교육, 금융, 바이오, 반려동물, 소개팅, 전기차 충전 등 다양한 업종에서 AI 관련 창업이 쏟아졌죠.
하지만 창업만큼이나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입니다. 2020년 이후 설립된 AI 기업 104곳 중 자본보다 부채가 더 많은 곳이 절반에 가까운 50곳에 달합니다. 2023년 기준으로도 투자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빚에 시달리는 곳이 상당수입니다.
AI 스타트업의 양극화, 그 원인은?
이처럼 똑같이 AI 붐에 올라탔지만, 어떤 회사는 거액에 인수되고 어떤 회사는 빚더미에 앉게 된 이유는 뭘까요?
대형 VC의 투자심사역은 “AI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창업 미팅을 하다 보면, 해당 업종에서 AI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결국 시장에서는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된 소수 기업에만 투자금이 몰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앞으로의 돌파구는?
고려대 AI연구소 최병호 교수는 “이전에는 기술이나 아이템만 괜찮으면 적당한 투자가 이뤄졌지만, 요즘은 투자 한파로 자금이 검증된 스타트업 몇 곳에만 쏠린다”고 분석합니다.
그는 해결책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 투자 기회의 고른 분배: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금이 다양하게 흘러가야 합니다.
- 정부 지원 확대 및 규제 완화: 벤처캐피털(VC) 지원을 늘리고, 창업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합니다.
한국 AI 스타트업,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한국의 AI 스타트업 생태계는 ‘극소수의 성공’과 ‘다수의 생존 위기’라는 양극화 속에 놓여 있습니다. AI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일상과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수 기술’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창업 초기부터 기술력과 시장성을 모두 갖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부와 투자자, 산업계가 함께 힘을 모아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AI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단순한 트렌드 쫓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기술력과 사업 모델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리고 시장에서의 실질적 수요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