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외이사 제도, 27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제 역할을 못할까?
한국의 대기업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투명성과 경영진 견제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제도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사외이사 제도의 현주소와 그 한계,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달라져야 할지 쉽게 풀어보려 합니다.
사외이사란 무엇인가?
먼저 사외이사란, 기업 경영진(사내이사)이 아닌 외부 인사로서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의견을 내고,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회사 밖’ 전문가가 이사회에 들어와 잘못된 의사결정이나 사익 추구를 막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현실은 ‘거수기’에 머무는 사외이사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거수기(찬성 버튼만 누르는 사람) 역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상위 11개 대기업 그룹의 122개 상장사 이사회에서 1년간 3,575개 안건을 처리하는 동안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18번, 그 중에서도 진짜로 경영진과 독립적으로 반대의견을 낸 건 3건에 불과했습니다. 사외이사 449명 중 1년간 독립적으로 의견을 낸 비율이 0.67%밖에 되지 않는 셈이죠.
이렇게 낮은 반대율은 사외이사들이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대주주나 경영진과 학연, 지연, 또는 정관계 인맥으로 얽혀 있어, ‘독립성’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왜 사외이사 제도는 실패하는가?
사외이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독립성 결여 -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나 경영진이 직접 추천하거나 인맥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경영진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 사외이사가 기업으로부터 받는 고액의 보수도 이들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결국 ‘고용된 직원’처럼 행동하게 되죠. - 국세청, 관료 등 특정 집단 출신이 사외이사 자리를 장기적으로 점유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업과 해당 집단 간 유착, 이해상충 가능성이 커집니다.
2. 전문성 부족 - 많은 사외이사들이 교수, 전직 관료 출신으로, 실제 기업 경영 경험이나 업계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 이사회 안건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일 때, 사외이사가 충분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면 실질적 견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 실제로 국내 사외이사 중 경영인 출신은 15%에 불과합니다.
‘독립성’ vs ‘전문성’,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제는 ‘사외이사’라는 이름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 전문가는 “과연 독립이사로 이름만 바꾼다고 진짜 독립된 이사가 나올 수 있는지, 그리고 독립성이 중요한지 전문성이 중요한지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해외 주요국에서는 사외이사 구성을 다양하게 하고, 관계 출신이나 교수보다 실무 경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와 확연히 다른 이사회 구성입니다.
제도 개선 시도, 하지만 한계는 여전
최근 정부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을 바꾸고, 이사회 내 의무선임 비율을 4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상향하는 등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 사외이사 임기 상한제 도입, 임기 시차제(경영진과 사외이사 임기 겹침 방지) 등 다양한 개선책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변화만으로는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모두 담보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여전히 대주주와 경영진이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관여할 수 있고, 인맥 위주의 선임 관행도 쉽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 독립성 강화: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외부 전문가, 주주,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인맥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인사 대신, 진짜로 독립적인 인사를 등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전문성 제고: 단순히 교수, 관료 출신이 아니라, 실제 경영 경험과 업계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사외이사로 영입해야 합니다.
- 투명한 정보 공개: 사외이사의 활동 내역, 찬반 의견 등을 주주와 일반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감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 이사회 다양성 확대: 젊은 전문가, 여성, 다양한 분야의 인재 등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마치며
사외이사 제도는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경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독립성과 전문성 모두에 한계가 많습니다. 제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업문화와 선임 관행까지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진짜 ‘감시자’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가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름뿐인 사외이사’가 아닌, 진짜 회사의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책임지는 사외이사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