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항, 한산해진 자동차 수출의 현장
자동차 수출의 심장이라 불리던 경기도 평택항이 최근에는 평소의 분주함을 잃고 있습니다. 평택항은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량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거대한 항만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직접 찾은 평택항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왕복 6차선 도로에 차량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가 드문드문 지나갈 뿐, 예전의 북적임은 사라졌습니다.
항만 야드 역시 한산합니다. 넓은 공간에 차량들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고, 차량 사이의 빈 공간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평택항에서 오래 일한 관계자들은 “수출이 줄면 제일 먼저 부두와 야드가 텅 비게 된다”고 말합니다. 보기에는 차량이 다 빠져나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새로 들어오는 수출 물량이 확 줄어든 상황입니다.
평택항 주변 상권, 함께 흔들리다
자동차 수출이 줄면 항만만 조용해지는 게 아닙니다. 평택항 주변의 식당, 편의점, 작은 상점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포승공단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출근하는 인원이 줄면서 손님도 거의 끊겼다”고 토로합니다. 일부 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고, 남은 곳도 버티기 힘든 상황입니다.
미국발 관세 폭탄, 한국 자동차 수출의 직격탄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의 자동차 관세 인상이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 자동차의 최대 수출 시장입니다. 지난해 기준, 한국 자동차 전체 수출액 708억 달러 중 무려 347억 달러, 즉 49%가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관세를 25%로 올리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 중 미국 내 생산 비중이 42%에 불과합니다. 경쟁사인 포드(101%), GM(63%), 도요타(49%)보다 낮아, 관세 리스크가 더 큽니다. 실제로 25% 관세가 도입된 이후, 지난달 미국향 자동차 수출액이 7억 300만 달러 줄었습니다. IBK경제연구소 등은 이로 인해 연간 자동차 대미 수출액이 65억 달러 감소하고, 국내 완성차 기업의 영업이익이 약 10조 원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수출 전반의 위기감
관세 충격은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들도 미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일반기계 수출은 전년 대비 22.6% 감소했고, 반도체도 31% 줄었습니다. 전체 15대 주요 수출 품목 중 8개 품목이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이 감소하는 등 수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다음으로 수출 비중이 큰 일반기계는 6.3% 감소, 석유제품과 석유화학도 각각 14.4%, 13.1% 줄었습니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우리 수출 산업의 근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버팀목이지만…불안한 미래
다행히도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가 전체 수출을 버텨주고 있습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16억 7,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17.2% 증가했습니다. 특히 고부가가치 메모리 제품(HBM, DDR4 등)의 수출 호조 덕분에 4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앞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조사는 270일 이내에 끝나며,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나 무역 제한 조치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관세 조치 가능성에 대비해 일부 기업들이 단기적으로는 반도체를 미리 사들이는 ‘사재기’ 현상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당장은 수출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출 환경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의 전망과 우리 산업의 과제
지금 평택항과 우리 수출 산업이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정책 변화는 우리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기계 등 주력 산업 모두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리는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관세와 환율 변동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신기술 개발과 시장 다변화,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가 필수입니다.
마무리: 변화의 현장에서 느낀 점
평택항의 한산한 풍경, 주변 상권의 침체, 그리고 수출 현장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목소리들은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자동차와 반도체, 그리고 다양한 수출 품목들이 미국발 관세와 글로벌 불확실성이라는 높은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고, 산업 구조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평택항의 활기찬 모습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수출 산업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나갈지,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