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힙지로에서 시작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꿈, 그리고 현실
서울 중구, 일명 ‘힙지로’. 최근 몇 년 사이 감각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 꿈을 안고 가게를 열었던 청년 창업자 이성유 씨(가명, 34세)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해 보였던 힙지로의 그림자, 그리고 청년 자영업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했습니다.
힙지로에 몰려든 식당, 그리고 매출 급감의 악순환
이성유 씨는 직장생활로 모은 돈에 대출까지 더해 레스토랑을 창업했습니다. 하지만 힙지로가 뜨자마자 주변에 유사한 레스토랑,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은 하루가 다르게 줄었고, 인건비와 재료비는 계속 올랐습니다. 상권이 살아나자 건물주도 임대료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올해 초, 3년 만에 가게를 폐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명의 실패담이 아닙니다. 최근 힙지로를 비롯한 서울 도심, 전국 주요 상권에서 청년 자영업자들이 겪는 현실 그 자체입니다.
청년 창업, 왜 이렇게 힘들어졌을까?
유행에 민감한 업종의 함정
MZ세대(2030)는 트렌디한 카페, 레스토랑, 디저트숍 등 유행에 민감한 업종에 창업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업종은 대박이 날 수도 있지만, 유행이 식거나 경쟁이 격화되면 매출이 급감합니다. 최근 몇 년간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서 화제가 된 메뉴를 앞다퉈 도입하는 곳이 많아졌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자본력의 한계와 경기 침체의 이중고
청년 창업자들은 자본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로 모은 돈과 대출이 전부인 경우가 많아, 매출이 줄면 금방 버티기 힘들어집니다. 최근 경기침체와 소비 부진은 자영업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손님이 줄고, 고정비(임대료, 인건비, 재료비)는 오르기만 하니, 버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실제 데이터로 보는 폐업 현실
KB국민카드의 가맹점 데이터를 보면, 20~30대 신규 창업 비중은 줄고 폐업률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대 신규 가맹점주는 2022년 11.8%에서 올해 9.7%로 감소했고, 30대도 25.3%에서 23.8%로 줄었습니다. 반면 50~60대는 신규 창업 비중이 오히려 늘었습니다. 카드 가맹점 해지율(=폐업률)도 젊은 층에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5060세대는 왜 창업이 늘었을까?
은퇴 후 창업, 무인점포 열풍
반대로 50~60대는 은퇴 후 노후를 대비해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무인점포, 키오스크 등 IT기술을 접목한 창업 아이템 덕분에 창업 비용이 낮아졌고, 퇴직금 등 자본 여력이 있는 중장년층이 창업시장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자금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2030세대보다 창업 후 버티는 힘이 더 강한 편입니다.
자영업, 과연 누구에게 유리한가?
경쟁 심화와 내수 부진, 자영업의 양극화
지속되는 내수 부진 속에 신규 가맹점 등록률은 지난해 13.2%에서 올해 10.9%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가맹점 해지율은 13.2%까지 오를 전망입니다. 즉, 자영업 시장 전체가 얼어붙고, 살아남는 곳과 문을 닫는 곳의 양극화가 심해진 셈입니다.
특히 유행에 따라 좌우되는 업종, 자본력이 약한 청년 창업자들에게 현실은 ‘극한직업’에 가깝습니다. 자영업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준비와 자본, 전략이 없다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고위험 고난이도’ 영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청년 자영업,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1. 트렌드 쫓기보다 본질에 집중
유행하는 메뉴, 인테리어, SNS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본질은 결국 ‘맛’과 ‘서비스’, ‘지속 가능한 운영’입니다. 트렌드는 쉽게 바뀌지만, 단골손님을 만드는 힘은 꾸준한 품질에서 나옵니다.
2. 자본계획과 리스크관리
여유자금 없이 대출에만 의존한 창업은 위험합니다. 예상치 못한 매출 하락, 임대료 인상, 인건비 상승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한 비상금과 리스크 관리 전략이 필요합니다.
3. 상권분석과 차별화
같은 상권, 같은 메뉴, 같은 분위기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내가 진출하려는 지역의 상권을 꼼꼼히 분석하고, 뚜렷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자영업, 준비 없는 도전은 위험하다
힙지로에서 만난 이성유 씨의 사례는, 오늘날 청년 자영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유행을 좇아 창업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차별화, 본질에 대한 고민, 그리고 리스크 관리가 동반되어야만 비로소 ‘내 가게’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자영업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작은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힙지로처럼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곳일수록, 그 이면의 치열한 현실을 꼭 기억하세요.